단독 AI가 작성한 보험민원 급증…“처리시간 최소 1.5배 늘어나”
이미지 확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보험 민원이 급증하면서 금융감독원과 개별 보험사들의 업무 부담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I를 쓰다 보니 민원을 위해 작성한 글의 분량을 손쉽게 늘리고 거짓 판례까지 제시되는 사례가 많아 정상적인 민원 처리에 지장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금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보험사 39개사에 접수된 민원은 1만 5996건으로 지난해 4분기(1만 5213건) 대비 5.2% 증가했다. 지난해 1분기 대비로는 19.3% 급증했다.
생보사(22곳·4888건)보다는 실손보험과 자동차보험 비중이 높은 손보사(17곳·1만 1108건)에 더 많은 민원이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분기 접수된 보험 민원의 65.4%가 보상·지급에 대한 내용이다.
이미지 확대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체 금융권에서 손보사와 생보사 민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7.6%, 11.4%로 절반 수준이다. 다른 업권에 비해 보험 민원이 유독 많은 건 계약 체결 건수에 비례하는 측면도 있지만 복잡한 상품이 그만큼 많고 모바일 서비스 확대로 민원 접수 절차도 간편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내 주요 보험사 대부분 생성형 AI를 활용한 민원 작성 사례가 많아지면서 건당 처리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이다. AI를 활용해 1페이지로 끝날 분량을 10페이지로 늘리더라도 금감원과 보험사 입장에서는 한 장씩 다 살펴봐야만 한다. 쟁점이 아닌 사안까지 검토해야 하는 만큼 처리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순 사실관계가 아니라 법률관계를 주장하면 더 골치 아프다. 별도의 법률 검토 과정을 거쳐야 할 뿐만 아니라 AI가 거짓 판례를 활용해 서류를 작성하는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이 심각해 더욱 상세히 살펴봐야 한다. AI가 복잡한 법률이나 보험약관을 쉽게 알려줄 수 있지만 여전히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설명이다.
대형 손보사의 한 관계자는 “AI로 작성한 민원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관계부터 적용 법률, 약관 해석에 오류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보상 담당자나 민원 처리 담당자는 고객의 주장 내용을 모두 검토해서 회신해야 하는데 이걸 다시 AI로 이의 제기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로 보험 서류 작성이 쉬워지다 보니 회사 측 설명을 신뢰하지 않거나 오류 여부를 따지지 않고 민원부터 넣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국내 한 손보사는 한 민원인이 최근 두 달 동안 동일한 내용을 AI로 조금씩 바꿔 40차례나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당국이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면서 민원 건수를 줄이려고 하자 이를 악용해 더 많은 민원을 제기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 당국과 보험사들이 민원에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적극적으로 민원을 제기해야 보험금을 받을 확률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국내 한 손보사의 민원 담당 본부장은 “보험사가 답변서를 보내면 너무 쉽게 AI로 답변을 작성해서 다시 민원을 제기하기 때문에 서류를 주고받는 과정이 더 오래 걸린다”며 “정량적인 통계를 내지는 않았으나 건당 처리 기간이 최소 1.5배는 길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AI 민원으로 인한 부담이 가중되다 보니 일부 보험사는 AI 보상 분쟁 질의가 접수되면 금감원에 민원을 접수해보라고 제안 후 관련 절차를 안내하고 있다. 국내 보험사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도 AI 작성 민원 감당이 안 되자 각 보험사에 한 차례 걸러서 보내줄 것을 당부하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금융 당국은 AI를 활용한 보험사기도 눈여겨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생성형 AI 등을 활용해 신분증, 진단서, 차량 파손 사진 등을 위변조해 보험금을 청구하는 신종 보험사기가 발생하자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보험 업권의 한 관계자는 “AI로 작성된 민원에 대해서는 보험사도 AI로 답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국내 규제 환경상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